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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가능성을
가능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강박적으로 활용하지 않을 때에만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롭다.”
-스베냐 플라스푈러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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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요가매트만큼의 세계(이아림 저/북라이프)
처음 요가를 시작할 무렵 등 뒤로 합장하는 자세가 되지 않았다.
열중쉬어는 된다.
그런데 그 자세에서 어떻게 손목을 돌려 손바닥을 마주 대지?
늘 컴퓨터 앞에 있다 보니 어깨가 움츠러든 게 문제였다.
난 척추측만증과 일자목이다.
여기에 어깨마저 안으로 말려 있다.
요가 선생님은 “한복 입으면 예쁜 어깨네.”라고 위로해주셨는데 하하하하하…
솔직히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처음엔 극기로 되는 줄 알았다.
오기로 버텼다.
숨도 쉬지 않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어림도 없었다.
“음 안 돼. 지금은 무리야.”
몸이 말한다.
그 유보 없는 태도. 분명한 한계선.
참 단순하고 명쾌하다.
우리는 긍정의 배신을 안다.
‘하면 된다’ 생각하면 끝이 없다.
일도 잘하고 싶고 사랑도 잘하고 싶고 완벽한 커리어와 휴식도 갖고 싶다.
하지만 무엇도 충분치 않기에 수많은 옵션, 갈림길, 선택지 앞에서 수시로 방황하는 게 아닐까.
독일의 사회학자 스베냐 플라스푈러는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에서
“모든 가능성을
가능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강박적으로 활용하지 않을 때에만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롭다.”
고 했는데,
난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두고도 이 필터가 좋을까 저 필터가 좋을까 한참을 망설인다.
매사가 그렇다.
애매하고 두루뭉술하고 모호하고 흐리멍덩하다.
이런 안개 속을 걷다 보면 매트 위 허리를 비틀어 땅을 짚는 동작에서,
부들부들 떨리는 몸의 실감에서 엄청난 안도를 느낀다.
요가를 하다 보면 안 되는 것 투성이다.
내 몸뚱인데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고개를 들어야 하는데 들리질 않고
저만큼 손을 뻗어야 하는데 다다를 수 있는 건 겨우 이만큼이다.
으라차차 악을 써도
팔은 부들부들, 다리는 휘청휘청, 허리는 멍청한 통나무처럼 요지부동이다.
그럴 때마다 (당연하게도) 화가 난다.
분하다.
내가 한심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겨우 이만큼’이라는 자각에서 후련함도 느끼는 것이다.
겸허해지면서 자유로워지는 것일까.
아리송하거나 난해한 점은 아무것도 없어서 이것이 되레 해방감을 준다.
내가 다니는 요가원은 자유롭고 역동적인 요가를 표방한다.
호흡의 리듬에 따라 끊임없이 동작이 이어진다.
건장한 성인 남성도 하다 보면 땀을 뚝뚝 흘린다.
(당연하지만 그 땀은 매트로 떨어진다. 공용 매트에 나는 가끔 코를 박는다. 그런 동작들이 있다.)
늘 쫓아가기 바쁘고
오른쪽 다린지 왼쪽 다린지 대단히 헷갈리고,
무엇보다 아프다.
온몸이 다.
숨 쉬는 것도 어렵다.
그러니 손을 뻗고 고개를 들고 간신히 균형을 잡는 사이,
적금 만기일이나 보험 납부액 따위를 떠올릴 여유는 없다.
최소한의 것만 받아들이고 사고한다.
겨우 매트 크기만큼의 세계다.
물론 안 되는 건 (반복하면) 된다.
언젠가는 된다.
그러나 그런 성취 여부를 떠나 맨몸으로 해나가는 요가엔
그 자체로 심플한 멋이 있고,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조울증과 선택장애를 겪는 현대인들에게)
대단히 드문 체험이 아닌가 생각한다.
삶의 수많은 가능성에 압도당하는 누군가에게
작은 매트 위 요가를 강권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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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내면의 神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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